제4화...기다림의 끝엔 그녀가 있었다.아홉번째 이야기.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현식은 벌써 두시간째 고민중이다.
크리스마스를 잘 보내라는건..
연인으로 발전할 마음이 없다는 완곡한 표현인지,
내심 기대했었다는건..지금이라도 늦지않았다는 뜻인지..
현식은..자기에게 좋은 방향으로 해석을 하다가도..
마치 풍선을 놓쳐버린 아이처럼..한순간에...
맥이 쪼옥 빠지곤 했다.사랑한다고까지 말했지만..
세희는...그저 기분 나쁘지 않다...그정도란 말인가?
한 남자가 8년동안이나 자기만 바라보고 있었다는데..
크리스마스를 잘 보내라니...
그녀는 그렇게 이기적인 사람이었단 말인가?
남의 세월 따윈...안중에도 없는..그런 여자?
현식은..그동안의 상처들이...한꺼번에 속살을 드러내며
자신의 통증을 호소하는듯 했다.
그리고 현식은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처럼..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다행히 방학이 시작됐고..
시작과 동시에..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눈쌓인 설악에..세희를 묻어 두리라.
8년동안의 사랑을 그대로 벗어놓고 돌아오리라.
눈쌓인 한계령앞에서...현식은...가만히 되뇌어 보았다.
'세희야! 잘가'
세희의 환한 미소가 보이는듯 했다.
세희는..미안하단 말대신..그렇게 다소곳하게 웃어줄
그런 여자였다.가장 그녀다운 모습으로...
작별을 말한것이리라.
내가 사랑한 세희의 모습은...바로 그런 거였으니까..
단호함보다는 부드러움을 지닌 여자,
화내고 분노해야할 시점에서..맥없이 웃어버리는 여자,
급할때일수록...서두르기 보다...
제 손톱을 만지작거리는여자,
이번에도 역시..세희는 자신의 당혹감을..
최대한 자연스럽게...최대한 부드럽게..
그렇게 전해온것이리라.
아무리 털어내려 해도..세희는 참 좋은 여자라는 사실..
그것만은 현식도 어쩔수가 없었다.
보름동안 동해안을 돌면서...현식은...세희와의 이별여행을
끝냈고..돌아올때쯤엔..
제법 담담한 모습을 유지할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현식은..사흘내내 잠만 잤다.
그동안의 여행이 가져온 스트레스로...현식은 아무런 생각도
할수가 없었다.그리고 나흘째 되던날...
크리스마스 이브에...현식은 어머니께서 건네주는 수화기를
무심코 건네 받았다...수화기 건너편에서...그녀의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선배님! 저 세흰데요.지금 서울이거든요.
아기예수께서 할말이 있대요."
"어? 무슨...?"
"이메일루 보내셨다네요..."
그리고 전화는 끊겼다.현식은 컴퓨터를 켰다.세상에 이렇게
접속속도가 느려서야..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세희의 목소리로 봐선..분명..구원의 소식이리라.
받은 편지함...그녀의 이메일을 열었다.
'선배님! 크리스마스 잘 보내랬더니.. 어디 가신거예요?
멋진 크리스마스를 위해..저는 지금 우리학교앞..
카프카의 연인..밀레나로 가고 있어요.그사람이 올까요?'